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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아닌 매주십시오. 거 는 것 하얀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편집자말>
[최은영 기자]









▲  세상 똑똑한 소비자가 될 수 있는 줄 알았던 유튜브 프리미엄


ⓒ YouTube




한동안 9만 5000원짜리 핸드폰 요금을 썼다. 핸드폰 기계를 무료로 받는 약정 요금이었다. 데이터 무제한에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유튜브 프리미엄제 포함이었다.

데이터 무제한과 유튜브 프리미엄은 신세계였다. 너무 중요하고 값진 정보를 광고 스킵이라는 수고 없이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었다.
살림하면서 아산병원 정희원 교수 채널을 정주행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영상이니 매우 중요했다. 아이와 분쟁이 있을 때는 유명하다는 청소년 정신 급여압류제도 의학과 교수 강의를 다 찾아 들었다. 세상에 나처럼 똑똑한 소비자가 또 없네.
아무리 들어도 끝이 없었기에 아이를 태우고 오가는 차에서도 계속 들었다. 아이가 말을 걸면 짜증이 났다. 너는 엄마가 이렇게 중요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말을 걸고 싶니? 눈치가 이렇게 없어서야 원.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정부가 시작됐다. 국제정 참저축은행 세도 좀 알아야지 싶어서 자기 전에도 이어폰을 챙겼다. 혹시 아이가 부르면 자는 척 눈을 꼭 감았다. 스마트한 에미가 되려는 노력 중이니 이 정도 거짓말은 너희가 이해하렴. 끝까지 들은 적은 없지만 수면 유도용으로도 나쁠 거 없겠지.
4050이 이걸 몰라서 메이크업을 망친다고? 어머, 이건 꼭 봐야겠네, 해놓고선 빨래를 갠다. 메이크업 영 디딤돌대출 중도상환수수료 상이면 화면을 봐야 뭘 알 텐데 소리만 들으면서 내가 정보를 습득한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소리만 듣는 4050 메이크업, 패션이 또 내 알고리즘으로 들어왔다.
건강, 국제정세, 식단, 메이크업, 패션, 교육 등 그야말로 야무진 잡탕이 내 핸드폰에 진을 쳤고 나는 하나라도 더 흡수하겠노라며 시간을 열심히 아꼈다(고 그때는 믿었다).
중국휴대폰요금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삶 자체가 공부인 하루가 매일 지나는데 정작 내 안은 텅 비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12월이 왔고, 새해 예산을 세웠고, 약정 요금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제일 저렴한 요금제로 바꾸면서 유튜브 프리미엄도, 데이터 무제한도 끝났다. 아쉬웠지만 가정주부의 폰 요금 9만 5000원은 너무 과했다.
한정된 데이터를 써야 하니 운전할 때 라디오를 틀었다. 피아졸라의 그랜드 탱고가 나왔던 날, 나는 주차장에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내릴 수 없었다. 내리지 못하는 나를 의아하게 여기는 아이에게 내가 잊고 있던 피아졸라를 말해줬다.
아이는 새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피아졸라가 나를 스마트한 에미로 만들지는 못해도 나를 온순한 에미로 만들었다.

확 달라진 일상, 똑똑한 소비자라 생각했는데...










▲  삶 자체가 공부인 하루가 매일 지나는데 정작 내 안은 텅 비어가는 것 같았다.


ⓒ nampoh on Unsplash




현대인이 정보 수집에 과잉 집착하는 이유는 원시 시대부터 이어진 본능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마치 사냥꾼처럼 끊임없이 정보를 찾아 나선다. 어디에 먹을 것이 있는지, 어떤 지역이 위험한지 아는 것은 생사를 가르는 문제였고, 이 능력 덕분에 인류는 살아남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는 더 이상 맹수를 피하거나 열매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끝없이 정보를 수집한다. 문제는 정보의 양이 홍수처럼 쏟아진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뉴스, SNS 피드, 광고들은 우리의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불안감을 키운다.
원시 시대에는 정보가 생존을 보장했지만, 현대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정보가 우리의 정신적 여유를 갉아먹는다. 결국, 사냥감을 추적하던 뇌는 이제 쓸모없는 정보까지 쫓으며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건강한 삶을 위한 식단, 중요하다. 그런데 강의를 들어야 할만큼 방법을 모를까? 가공식품보다 자연식을 먹고, 야식만 끊어도 평타 이상이다. 훌륭한 심리학자의 양육 강의보다 지금 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트럼프 행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해서 내가 그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데이터 무제한과 유튜브 프리미엄은 알고리즘의 폭주에 나를 내맡기는 일이었다. 알고리즘은 인간과 다른 영역의 존재다. 일상을 어지럽히는 묵직한 압박을 내가 불러와서 내 목줄을 맡긴 꼴이었다. 유튜브 설정에서 알고리즘 기록을 지웠다.
이제 잠자리에서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낮에 하지 않았던 내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낮에는 갑자기 웃긴 게 생각났다며 내게 말을 거는 아이를 위해 설거지 하던 고무장갑을 벗는다. 차에서 라디오를 켜며 오늘의 선곡을 기대한다. 들어오는 정보양은 현저하게 줄었지만 생활의 윤기는 현저하게 올라간다.
무제한이라는 말은 마법 같다.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 놓치지 않아야 할 기회,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 끝없는 자유는 끝없는 속박이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지혜는 흐려졌고 지식은 쌓였지만 여유는 사라졌다.
알고리즘이 나를 길들이기 전에 내가 나를 정화해야 한다. 유익하다는 이유로 아무 정보나 삼키지 않고,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되묻는다. 들을 가치가 있는 말과 흘려보낼 말을 구분하고,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무제한 정보 대신 유한한 하루를 더 깊이 살아간다. 중요한 건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것이었다. 저주받은 신세계였던 데이터 무제한과 유튜브 프리미엄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 group 》 4050글쓰기 : https://omn.kr/group/4050_writer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