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백종원도 숟가락 끝 떨었다, 제주 토박이만 먹는 '봄의 보물' [백종원의사계MDI] | 작성일 | 2022-04-10 19:12 |
글쓴이 | 수지웅민 | 조회수 | 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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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봄을 진정 풍요롭게 만드는 서민의 보물멜조림에 돔베고기 싸서 드셔보심?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현대 한국인이 멸치와 거리를 두고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반적인 한국인의 식생활을 유지한다면 어떻게든 멸치와 관련된 음식을 섭취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김치에는 멸치젓이 들어 있고, 멸치볶음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기본 반찬. 또 국이든 찌개든 가장 흔히 쓰이는 국물 재료가 멸치다.대한민국에서 멸치로 이름난 곳을 물으면 뭘 좀 아시는 분들은 기장과 거제를 꼽는다. 맞다. 기장군 대변항과 거제시 외포항을 빼놓고 한국인의 멸치를 논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또 한 군데, 빼놓으면 서러울 곳이 바로 제주도다.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제주 서남쪽 모슬포항 근처에서는 오래전부터 봄철에 멸치잡이 배가 들어올 때면 동네 사람들이 “멸치 배 들어와요! 멸치 털러 나와요!”하고 소리치며 모여들어 그물에 걸린 수만, 수십만 마리의 은색 멸치를 털어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시인 성현의 『허백당집』에 실린 시는 이런 정경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어부들은 배를 타고 일제히 뱃전을 치면서 / 漁人乘舟齊擊楫서로 다투어 그물을 쳐서 잡아 올리는데 / 爭持網罟來相遮해마다 이것을 취해 마른 포로 만들어서 / 年年取此作枯腊항아리 가득가득 채워 천 가에 배포하니 / 充牣甔石排千家바닷가 사람들은 저마다 비린 맛에 배불러 / 海濱人人飽腥味비록 흉년을 만나도 탄식하지 않는다네 / 縱値飢歲無咨嗟 그렇게 해서 거둬들인 멸치로 제주 사람들은 육지와는 조금 다른 멸치 문화를 만들어 갔다. 이 지역에서 잡히는 멸치는 일단 씨알이 좀 굵다. 그리고 쪄서 말리는 대부분의 멸치와는 달리 생물로 조리하는 법이 발달해 있다. 그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부르는 이름도 조금 다르다. ‘멜’이라는 이름이 쓰인다. 국을 끓이면 멜국, 조리면 멜 조림, 젓갈은 멜젓이 된다.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그중 가장 억울한 의심을 받는 음식은 멜국. 마른 멸치로 국물을 낸다면야 뭐랄 사람이 없겠지만 생멸치로 국을, 게다가 매운탕도 아닌 맑은국을 끓인다면, 국물이 밥상에 놓여도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종원 대표도 살짝 숟가락 끝이 떨렸다. 멸치회를 먹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생멸치는 조금만 물밖에 나와 있어도 비린 맛이 난다. 멸치회를 내놓는 식당들도 대부분 멸치는 회무침으로 파는데, 비린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초고추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먹어보기도 전에 얼굴을 찌푸리곤 한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달리, 생 멸칫국은 아주 오래된 우리의 전통 음식이다. 『자산어보』에는 ‘멸치를 추어(鲰魚)라고 표기하며, 현지에서는 멸어(蔑魚)라고 부른다. 몸이 아주 작아서 크기는 3~4치이며(중략) 국을 끓이기도(惑羹), 소금에 절이기도(惑醯), 그냥 말리기도(惑腊) 한다. 간혹 낚시 미끼로도 쓴다’고 되어 있다. 말리는 조리법과 국을 끓이는 조리법이 분리되어 설명되어 있다. 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생물로는 국을 끓이는데 기름기가 지나쳐 먹을 수 없다. 말린 것은 늘 일용하는 반찬이다(生者作湯 油膩不能食 乾者亦爲日用恒饌)’라는 기록이 있다. 반대로 마른 멸치로 국물을 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물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록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맛이 있느냐 없느냐다. 불행히도 이규경 선생은 뭔가 선도가 좋지 않은 멸칫국을 드신 모양인데, 감히 장담한다. 아무리 비린 것을 못 먹는 사람도 오늘날 제주도의 멜국을 먹을 때에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갓 건져 올린 싱싱한생 멸치와 봄동으로 끓인 멜국은 바닥까지 투명한 맑은국이지만 조금도 비리지 않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눈을 감고 먹으면 생선이 들어가 있나 의심할 정도다. 제주 사람들은 흔히 겨울에는 각재기국(각재기는 전갱이의 제주 사투리), 봄에는 멜국을 끓여 먹는데 맛과 모양새가 사뭇 흡사하다. 고소하고 산뜻한 멜국으로 입맛을 돋우면 본격적인 멜 포식에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싱싱한 생멸치를 튀김옷에 싸서 바로 튀겨낸 멜 튀김. 추어탕 집에서 취급하는 미꾸라지 튀김과 모습도, 맛도 흡사하다. 적당히 기름이 오른 멜 튀김은 간장에 찍어도, 초장이나 막장에 찍어 봄동이나 상추로 쌈을 싸도 맛있다. 다음엔 멜 조림과 돔베고기가 등장할 차례. 제주의 멜 전문 식당들은 멜국, 멜튀김, 멜조림을 파는데 대개는 돔베고기도 함께 판다. 영남 지역에도 ‘돔베고기’라고 부르는 음식이 있지만 그 돔베고기는 상어를 말하고, 제주의 돔베고기는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말한다. 제주 방언으로 ‘돔베’는 고기를 삶아 올려놓는 도마를 의미한다.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제주 특산 돔베고기는 멜젓, 즉 잘 삭은 멸치젓 국물에 찍어 먹는 게 국룰인데, 제주 토박이들에겐 돔베고기에 멜조림을 얹어 먹는 비장의 섭취 방법이 전해진다. 싱싱한 멸치에 고춧가루와 간장, 풋고추와 양파 등을 듬뿍 넣고 갈치조림처럼 조리면 고소하고 짭짤한 멜조림이 완성된다. 손바닥 위에 상추를 펴고, 멜젓을 살짝 찍은 돔베고기를 먼저 한 점 깔고, 그 위에 양념 잘 밴 조린 멜 한 마리를 얹고, 마늘 한 쪽을 곁들인 다음 돌돌 말아 입에 넣어 보자. 그리고 소주 한 잔. 크어 소리가 절로 난다. 그리고 반복 동작. 몸도 마음도 제주도의 봄밤에 젖어 든다.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멜과 돔베고기편. 인터넷 캡처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7~10㎝ 정도 되는 제법 큰 멜을 배를 갈라 말려 먹기도 한다. 봄 햇살에 잘 마른 멜은 그냥 먹기도 하지만 이 멜도 양념 조림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 고춧가루 양념에 달달하게 조린 말린 멜 조림은 제주 사람들의 향토 음식이라지만 누가 봐도 영락없는 밥도둑. 튀김 먹고, 돔베고기에 멜 조림 얹어 먹고, 멜국에 밥 말아 마무리할 때 이 말린 멜 조림까지 있으면 제주식 멜 코스 완성이다.이렇게 다 시켜서 3~4명이 배를 두들기며 먹어도 소줏값을 포함해 10만원이 안 되는 가격. 제주의 봄은 멜이 있어 진정 풍요롭다.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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