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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이 불면 불수록 녀석은 더 많은 먹잇감을 입속에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5일 뒤, 도시를 전부 잿더미로 남기고서 녀석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신의 저주인가” 19세기 영국 화가 존 마틴이 묘사한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



가족들이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누던 따뜻한 공간은 폐허가 되어 바꿔드림론 버렸습니다. 신께 기도를 드리던 예배공간도, 쾌락의 일탈로 가득한 매춘업소도, 왁자지껄 술을 마시던 주점도 이젠 아스라이 날아갑니다. 도시에는 이제 집을 잃고 길바닥에 나 앉은 시민들이 가득합니다. 웃음과 행복은 검은 연기와 함께 증발하고, 울음과 분노, 좌절만이 자욱합니다. 대재앙이라고 불린 1666년 런던대화재(The Great fire of Londo 개인파산신청서류 n)였습니다.

대화재는 많은 걸 태웠지만, 역설적으로 그 잿더미는 더 튼튼하고 강력한 시스템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소방 시스템과 더불어 오늘날 금융의 핵심 중 하나인 ‘보험 산업’이 태동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화마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요즘, 폐허 속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역사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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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틴의 ‘세상의 종말’.




작은 빵집에서 시작된 저주
1666년 9월 초 런던 푸딩 레인의 한 작은 빵집. 한밤중 이곳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습니다. 빵집을 삽시간에 태 신용등급올리는법 워버린 불은 도시로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당시 런던 대부분의 집이 목재로 이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불이 화려한 만찬으로 삼기에 딱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템스강의 물을 길어와 애써 꺼보려했지만 소용없던 이유였습니다. 5일 동안 불은 런던을 그야말로 초토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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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재가 시작된 푸딩 레인. [사진출처=Martin Addison]



1만 3200여채의 가옥이 사라집니다. 런던 전체 80%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80개가 넘는 교회도 전소됐지요. 상점과 곡식 창고도 화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재민의 수만 해도 10만명. 사람들은 “신의 저주”라고 울부짖습니다. 경제적 피해는 오늘날 가치로 4조원이 훌쩍 넘어서는 걸로 추산됩니다.

마침 666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악마의 숫자’. 1666년 신께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내린 벌처럼 보였습니다. 전년에도 흑사병이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터였습니다. 그야말로 재앙 중 재앙이었습니다.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런던이 신의 징벌을 받았다”는 팸플릿이 돌아다닐 정도였습니다. 집을 잃고 화가 난 시민들이 가톨릭을 가진 외국인을 표적삼아 공격해 죽이는 일까지 벌어졌지요.



“아직 전염병에서 회복되지 않았는데 불까지...” 1665년 런던 대역병을 묘사한 화가 리타 그리어의 2009년 작품.




화마가 멈춘 정쟁
“정쟁은 잠깐 접어둔다.”

인간의 위대함은 재앙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국왕 찰스 2세가 귀족들과 협력해 빠르게 도시 재건 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위기 앞에서 분열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찰스 2세와 의회는 런던 재건 특별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도시는 이제 석조로 다시 재건해야 합니다.” 크리스토퍼 렌.



런던 재건법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빨리 통과됩니다. 런던의 건물을 목재가 아닌 벽돌이나 석재로 지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불의 먹잇감을 애초부터 없애기 위함이었습니다. 석조 건물로 가득한 런던의 모습이 이때 윤곽선을 처음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재건 총책임자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이었습니다. 런던의 대표 건물인 세인트폴 대성당이 그의 작품입니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날때부터 불길을 자궁삼아 태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불에도 쓰러지지 않게 하겠다는 건축가들의 마음도 방염포로 작용했습니다.



불에 타기 전 세인트폴 대성당.





재건된 세인트폴 대성당.




민간이 재건의 기둥이 되다
“도시 재건을 위해 우리 시민들이 도와주시오.”

원대한 계획은 언제나 비용에 발목 잡히기 마련입니다. 런던 도시 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금을 거두려고 해도 이재민이 너무 많아 돈 낼 사람 자체가 줄어들어 버렸지요. 상점도 대부분 불에 타버려 경제는 마비에 가까웠습니다. 런던시가 묘안을 냈습니다. 도시 재건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자율은 4%. 당시 시장 채권 평균 이자 1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런던 시민들은 기꺼이 이 채권을 샀습니다. 도시 재건이 사익에 우선한다는 걸 알아서였습니다. 조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낮은 이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는데, 세금을 어찌내란 말이오.” 1666년 9월의 런던 대화재를 묘사한 그림.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는 건 그러나 애국심으로만으로는 불가합니다. 수요를 읽고 명민하게 움직이는 상인의 욕망이야말로 도시의 대들보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욕망의 경제학’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폐허를 재건하면서 돈을 벌려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바본이었습니다.



보험 산업의 기틀을 닦다
바본은 원래 의사였습니다. 1666년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전업을 결심합니다. 건축업에서 돈 냄새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벽돌공·석공·목수들을 한데 모아 주택 공급에 나섰던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공터에 허가도 없이 집을 짓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불법임을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채가 절실한 상황에서 법을 운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안에 니콜라스 바본은 런던에서 제일 잘나가는 건축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디서 타는 냄새...아니 돈 냄새가 나고 있잖아.” 니콜라스 바본.



그는 비도덕적인 인간이었지만 그만큼 돈을 버는 데는 천부적이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서였습니다. 바본은 집을 지으려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지을 수 있게 했습니다. 집이 완성되면 이자와 함께 원금을 회수합니다.

갚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담보로 잡은 집을 가져가면 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주택담보대출의 첫 등장이었습니다. 돈을 벌려는 바본의 이기심이 런던 재건의 반석이 되고 있었습니다.
바버의 사업전략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집을 지어주면서 런던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공통된 응어리를 읽어냅니다. 큰불에 대한 트라우마였습니다. 평생을 모은 돈과 생활 터전을 잃게 될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도 사업 기회를 포착합니다. 평소에 조금씩 돈을 내고 불이 났을 때 보상을 받는 ‘화재보험’ 사업이었습니다. 1680년 바본은 세계 최초의 화재보험 전문기업 ‘파이어 오피스’를 설립합니다. 사업은 그야말로 초대박이었습니다. 런던 사람들의 오랜 근심을 해결해줬기 때문입니다. 새로 재건된 런던 가옥 5000채가 가입될 정도였습니다. 전체 가옥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대영박물관이 자리한 웨스트엔드의 블룸즈베리 지구는 니콜라스 바본이 개발한 지역이다. [사진출처=Ham]




대화재의 역설
보험의 핵심은 위험의 분산입니다. 바본은 ‘남의 집 불 구경’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소방대를 운영하면서 보험 가입된 집의 안전을 살뜰히 챙겼습니다. 가옥의 안전이 본인의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소방이라는 공공서비스의 시작은 한 기업가의 욕망에 의해 잉태된 셈이었습니다. 런던 모델은 전 유럽으로 확산됩니다. 함부르크, 파리에도 화재보험 회사가 잇달아 생겨나면서였습니다.
바본의 사업 모델은 ‘보험’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화재보험의 성공을 본 여러 상인이 여러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입니다. 생명보험도, 해상보험도 바본의 성공을 모델 삼아 생겨난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이제 안심하고 사업하세요.” 18세기 화재보험 계약서.



보험이라는 ‘안전장치’가 생겨나면서 상인들의 도전적인 투자도 덤으로 따라옵니다. 더 이상 모든 재산이 불에 날아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보험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약 1경 307조원에 달합니다.

대화재는 런던이라는 도시의 파이를 키웠습니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런던을 빠져나가 근교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다시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웨스트엔드’라고 불리는 지역이 이때 형성된 지역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화재는 역설적으로 런던의 상인을 지방으로 내쫓았습니다. 기업가 정신은 자리를 옮긴다고 시들지 않았습니다. 지방에서도 새로운 터전을 삼아 상업을 일궜기 때문입니다. 브리스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도시들이 대화재 이후 상업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었습니다.



“이 마크는 우리 보험이 책임지는 집이라네.” 18세기 화재보험 계약서 표시.



고온의 불은 “우리는 모두 잉글랜드인”이라는 통합의 도자기를 구워냅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을 가여워하고, 돈 없이 부랑하는 시민들에 온정의 손길이 전국에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층민과 귀족 가릴 것 없이 그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시 대화재가 잉글랜드 시민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높여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목조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근사하고 웅장한 석조건물들도 들어섰습니다. 비위생적인 환경이 개선되면서 전염병의 위험도 낮아집니다.



대화재때 타버린 런던시청사도 아름다운 석조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출처=Diego Delso]




다시 미래로
물리적인 불은 사라졌지만, 그 잔불은 정치적 갈등에 옮겨붙었습니다. 찰스 2세의 뒤를 이은 동생 제임스 2세가 다시 의회를 무시하고 절대왕정을 시도하면서였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다가 결국 목이 잘린 아버지 찰스 1세의 길을 다시 밟고 있었습니다. 왕당파와 의회파가 9년 동안 치열하게 대립한 ‘잉글랜드 내전’(1642~~1651년)의 불씨가 다시 촉발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분열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더 이상 절대군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대화재가 만들어 놓은 통합이라는 기념물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도시를 재건하는 건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시민의식, 명민한 상인들의 경제감각, 시민들의 의견을 살뜰히 반영하는 정치 시스템이라는 걸 알아서였습니다. 절대군주 하나로는 결코 일굴 수 없는 성취라는 걸 깨닫고 있어서였습니다.



“평화롭게 새 주군께 인사드립니다.” 매리2세와 윌리엄 3세의 대관식.



영국 시민들은 제임스 2세를 내쫓습니다. 그의 딸 메리 2세와 남편 오렌지 공 윌리엄 3세의 공동 군주 체제를 준비합니다. 피 한 방울도 없이. ‘명예혁명’이라고 부르는 일대의 사건이었습니다.

1666년의 대화재는 도시를 삼켜버린 마그마였습니다. 펄펄 끓는 용암에 의해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런던은 이 잿더미의 화산토를 옥토로 일궈 수많은 결실을 일궈냈습니다. 아름다운 석재 건축물의 도시도, 권력에 굴하지 않는 시민정신도, 세계를 선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도 그 결과물입니다.
오늘날 모든 국가가 꿈꾸는 이상이 대화재 속에서 태어난 셈이었습니다. 끔찍한 화마가 국토를 할퀸 사진이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오늘날,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 한 도시 런던은 대화재의 화마가 빚어낸 예술작품이다. [사진출처=Ilya Grigorik]



<네줄요약>

ㅇ1666년 런던에는 도시 80%를 태워버리는 끔찍한 대화재가 발생했다.
ㅇ왕과 의회는 신속하게 협력해 도시를 석재건물로 재건하는 재건안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겼다.
ㅇ자본가들은 화재에 대한 공포를 해결할 ‘보험’산업을 태동시키기도 했다.
ㅇ재건 작업으로 시민들의 연대 의식이 통합되면서 평화적 정권 교체인 ‘명예혁명’을 이루기도 했다.
<참고문헌>
ㅇ이영석, 1666년 런던대화자:재난과 수습의 사회사, 역사학보 230집,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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