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랜드캐니언에 쌓인 나무 더미를 철거 중인 프에블로 인디언 주니족의 ‘조상 땅 보존단’ 봉사단원들. 벌채 잔재들은 산불이 발생하면 불을 확산하는 연료로 작용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선 이렇에 숲에 축적된 유기물을 미리 태워 없애는 ‘계획적 불놓기’가 오래 전부터 관행으로 정착돼 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누리집 갈무리





Q. 작은 불 미리 놔서 대형 산불을 막는 방법이 있다구요?
A. 네, 미리 불을 질러서 큰불을 막는, 우리로선 다소 생소한 산불 예방법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계획적 불놓기’란 것인데요. 영어로는 의사가 약을 처 단리 방하듯 불을 처방한다는 의미로 ‘불 처방’(prescribed fire)이라고 하고, 한국에선 다소 어려운 한자 말로 ‘처방화입’이라 부릅니다.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이번 영남 산불 탓에 대형 산불 예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긴요해지면서 이 계획적 불놓기가 조금씩 거론됩니다. 한국에선 아직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방법인데도 말이죠.
국 미필자 대출 립산림과학원의 류주열 연구원(산불연구과)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계획적 불놓기는 산불이 발생하기 전 단계에서 시행하는 예방 관리 정책 중 하나입니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확산을 막기 위해 사전에 산불의 연료들을 미리 태워 없애는 것이죠. 불이 나면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말라붙은 식물, 벌채 잔재 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그저 불을 지르는 게 아니라 여러 환경 진행시 적 변수를 고려한 통제된 조건 속에서 불을 놓습니다.



이렇게 불을 놓을 때 중요한 건 ‘바람’, ‘지역 내 경사도’, ‘연료 상태’ 3가지입니다. 미국 산림청의 ‘위험 연료 관리 및 계획적 불놓기 지침서’(2020) 등을 보면, 통상 풍속 8~15㎞/h이면서 경사도 30%를 초과 학자금대출신청방법 하지 않는 지역에 시행하기를 권합니다. 연료의 수분 함량은 20% 이하일 때가 효과적입니다. 류 박사는 “해외 매뉴얼을 보면 불의 관제를 위해 중요한 것이 연료의 상태로, 연료가 너무 마르지 않은 늦가을이나 겨울철, 이른 봄철에 하는 것이 제일 적절하다. 또 순간 풍속이 초속 5m 이상이 되면 곧바로 중단할 것을 권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팬오션 실제 불을 놓는 방식에도 여러 기법이 있는데, 가령 연료가 많거나 밀집된 관목층(키 작은 나무들) 지역에서는 바람을 거슬러 천천히 이동하며 태우는 ‘백킹 파이어’(역진 방화)가 바람직하고, 지형이나 바람 조건이 일정치 않을 땐 화재 확산을 조절하기 위해 화염의 강도나 확산 속도가 크지 않은 ‘프랭킹 파이어’(측면 방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 계획적 불놓기는 아메리카 등 여러 원주민 문화에서 오래전부터 관행으로 정착된 방법입니다. 서구 제국주의 영향으로 ‘화재는 진압하는 것’이란 통념 아래 한때 중단됐다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문화적 화재’(계획적 불놓기)가 없으면 유기물이 축적돼 숲이 파괴적인 산불 위험에 처하게 된다”며 “도시 개발, 기후변화로 더 크고 통제할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 원주민의 계획적 불놓기 전통은 통제가 불가능한 산불을 줄이는 데 가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여러 원주민 부족과 주 정부, 연방정부 사이에 많은 파트너십이 생겨서, “미국 여러 지역에 문화적 화재를 재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등 전통적인 생태지식을 현대적 관리에 점점 더 많이 통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래된 인류의 지혜를 뒤늦게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례랄까요?
실제 미국 산림청과 자연보호협회는 2008년부터 ‘트렉스'(TREX)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 기관을 비롯한 토지 소유자, 비영리 단체 등이 참여하는 계획적 불놓기 교육·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장비 사용과 안전 준수 절차 등을 익히는 실습 중심의 교육이죠. 미국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는, 이렇게 시행한 계획적 불놓기의 결과 산불의 강도는 76% 줄고 피해 면적도 37%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림청은 이러한 계획적 불놓기가 한반도 숲에 적합한지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금시훈 산림청 산불방지과장은 “간벌이나 임도 구축 같은 다른 예방 관리 정책을 통해 숲의 밀도를 어느 정도 낮춰놓아야 비로소 계획적 불놓기를 할 수 있다”며 “현행 폐기물법과 대기법과도 상충하는 지점이 있어 복합적 고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산림 면적은 629만헥타르로, 국토의 62.6%를 차지해 비중이 꽤 높은 편입니다. 1헥타르 안에 존재하는 나무의 수를 뜻하는 ‘임분밀도’를 보면, 한국은 1596그루인데 반해 독일은 700~1000그루, 스웨덴은 900~1200그루입니다. 한국의 나무가 그만큼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번 영남 산불에서 봤듯 우리나라에서도 갈수록 대형 산불이 잦아지는 상황이라, 간벌이나 내화수림 조성뿐 아니라 계획적 불놓기 같은 다양한 산불 예방 관리 기법을 국내에 적용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단 목소리도 주목받습니다. 류 박사는 “계획적 불놓기의 국내 도입이 어려운 이유는 산불 예방을 위해 우리 동네 뒷산에 불을 놓자는 개념에 익숙지 않고, 그래서 (산주나 주민들의) 찬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미 해외에선 나름 과학적 논리에 따라 활용되고 있다. 미국 몬태나주의 경우 우리처럼 높은 고도의 산악 지역에서도 계획적 불놓기를 하고 있다. 우리도 관련 연구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