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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으로부터 30m 위 CCTV 철탑에 올라 농성 중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지회장.


ⓒ 유지영




"가장 힘든 날? 오늘이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내일이 가장 힘들 것이다."

지상 30ｍ 위 CCTV 철탑에는 거센STX주가전망
바람이 불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라치면 철탑이 흔들거린다. 두 차례 단식 농성을 하고도, 파업 투쟁을 하고도, 끝내 해결되지 못한 조선소 하청노동자 처우 개선은 김형수(52)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을 결국 세찬 바람이 부는 철탑 위에 오르게 했다. 종종 까마귀들의 거처로 이용됐던 이곳에 60일 넘게 사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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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60일차인 지난 13일 오후 4시, 김 지회장을 고공에서 만났다. 서울 중구 한화빌딩 옆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30ｍ를 올라가 김 지회장을 마주했다. "사람이 있다"고 적힌 흰색 장막을 걷어내자 형형한 눈빛을 한 김 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CCTV 철탑은 몸을 90도로 꺾어서 누워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이다. 김 지회개미들닷컴
장이 까마귀 이야기를 꺼냈다. "한동안 까마귀가 계속 찾아왔다. 자기 집 빼앗겼다고 내 뒤통수를 때리고는 날아가더라. 미안하더라고."
김 지회장은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매일 철탑 벽면에 바를 정(正)자를 꾹꾹 새긴다. 이 철탑을 그린 그림도 벽면에 붙어 있다. 그는 '괴리' '고문' 같은 단어를 되뇌며 매일매일의 고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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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한다. 500일 된 박정혜와 100일 된 김형수 중에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고. 다들 김형수 하겠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농성 기간이) 짧은 게 낫다고.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나를 괴리시킨다. 그 괴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이 사회적 괴리로 사회적 문제를 반어적으로 이야기하는 거다음증시
다. 고문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기 싫다. 불이 났는데 사람을 끌고 가서 불이 났으니 보라고 할 수 없으니 '불이야' 소리 지르는 그런 거다."
- 큰 각오를 하고 올라왔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생각보다 (철탑이) 더 많이 좁더라.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더라. 3월에 눈도 오고 날씨가 계속 추웠다. 아직도 핫팩을 깔고 잔다. 저녁이 되면 산바람이 불고 낮이 되면 강바람이 분다. (건물 사이 부는) 바람이 있고."
-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인가.
"이대로 계속 안 바뀌고 갈까 싶어 무섭다. 그러면 나는 계속 여기 있어야 하니. 예전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나도 희망을 찾아서 조선소로 간 사람이다. 육체적인 어려움이나 힘든 일은 있어도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지닌 인간으로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곳은 그냥 힘든 게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조선소에서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다움을 버려야 했다. 아이러니한 건데 조선소가 그렇더라."

K-조선은 호황, 하청노동자는 밑바닥 신음










▲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지회장.


ⓒ 유지영




거제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던 17년차 용접공은 "조선소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현장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했다. CCTV 철탑 위에 선 그의 옆에는 28층짜리 커다란 흰색 건물인 한화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소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현장이 되지 못하는 것은 과연 누구 책임일까. 한화오션의 배를 만드는 하청노동자들은 여전히 한화오션과 직접 교섭하지 못한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아래 거통고지회)는 경남 거제, 통영, 고성 지역의 여러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가입한 지역 노동조합이다. 거제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도 상당수 가입했다. 거통고지회는 2024년부터 조선소 하청업체들과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교섭에서는 2016년 불황을 이유로 삭감한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상여금 550%를 회복할 것을 주요하게 요구했다. 하청업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용직(하청업체의 무기계약직) 확대 요구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년 만에 조선소에도 소위 'K-조선업'이라 부를 정도의 호황이 다시 찾아왔다. 한화오션은 2024년 한 해에만 2379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정작 조선소에서 배 만드는 하청노동자 임금은 삭감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단지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돈을 받을 뿐이다. 김 지회장은 하청노동자들이 저임금 일자리에 신음하는 현실을 두고 "조선소 현장에서 일 많이 하고 돈 적게 받는 하청노동자가 아니었으면 조선업이 다시 잘 됐을까"라고 되물었다.
푼돈 훔치면 처벌, 임금 훔치면 방관
김 지회장이 철탑에 오른 뒤에도 원청인 한화오션은 지회 핵심 요구사항인 상여금 지급 요구도, 상용직 고용 확대 요구도 거부했다. 지난 3월 한화오션은 "이는 각 하청업체가 근로자 대표와 교섭해야 하는 고유의 경영활동으로, 한화오션에 요구하는 것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한화오션이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지만, 지난 2022년 12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점을 인정했다.

한화오션이 그렇게 '교섭에 의무가 없다'고 버티는 동안 2024년에만 한화오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4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김 지회장은 "조선소 산재사고의 대부분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일이다.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산재가 일어난다"고 했다.










▲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 앞 CCTV 철탑 위로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올랐다.


ⓒ 유지영




김 지회장이 울분을 삼키며 말했다.

"웃기는 거다. 법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다치거나 쓰러지면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도와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하청노동자들 교섭에 법적 책임이 없다고 모른 척하는 것이 말이 되나? 2016년 조선소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지는 걸 보다 보면 지옥 같았다. 거제 앞바다에서 매일 자살해서 (시체가) 떠올랐다. 갑자기 모든 문제가 닥치니 그렇게 됐다.
우리가 어디서 100만 원을 훔쳤다고 생각해보라. 훔친 이는 법정에서 처벌받을 것이다. 그런데 임금을 100만 원 안 주는 것은 어떤가? 그렇게까지 처벌 안 한다. 사실 훔친 거랑 임금을 안 주는 건 똑같은 것인데도 그렇다."
지난 13일 이용우·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도 사다리차에 올라 김 지회장을 만났다. 김 지회장은 의원들에게 "국회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선도 대선이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요구에 진정성을 갖고 실질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주셔야 한다. 이것은 나의 요구이자 시민, 주권자로서 하는 요구"라고 했다.
김 지회장은 "시민들이 더는 실망하지 않고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만일 이번에 또 실망하게 되면 나는 정말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지회장 말에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 지회장은 의원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주먹을 꼭 쥐어 보였다. 의지를 다지는 듯했다.
"저 위에 진짜 사람이 있네"
김 지회장은 고공농성을 하면서 종종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이랑 영상통화를 한다. 김 지회장은 "고공농성을 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정상일 수가 없다. 스트레스가 밑(지상)에 있을 때 1 정도였던 것도 위에서는 5 정도까지도 받는다"라며 "고공에 더 오래 계신 분들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실 수 있다.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영상통화로 만난다"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이 하루에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휴대전화 액정이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여러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고공농성 소식을 하루하루 일기처럼 전한다. 생각한 바를 적어 내려간다. 고공농성에 연대하러 온 시민들이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새운 지난 10일 오전 그는 이렇게 적었다.
"고공농성 57일차. 한화 본사 앞 텐트촌 풍경입니다. 비가 부슬부슬 옵니다.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기는 아침입니다. 연대는 서로를 아름답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을 확인하는 아침입니다. 세상이 다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가들도 서로에게 이런 존재일까?"
김 지회장이 아무리 자신을 "힘들면 힘들수록 깡다구가 생기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그 또한 "간간이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리면 여기까지 올라온 목적을 잊고 나쁜 생각을 할 때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사다리차가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니 퇴근 시간이 곧이었다. 거통고지회 조합원들은 저녁 선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통고지회에 연대하던 시민들은 광장에서 김 지회장과 만난 뒤 지회 조합원이 됐다. 신입 조합원이 바라보는 고공농성은 어떨까.

맘마씨는 "밑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쉽게 '저 위에 진짜 사람이 있네'라고 말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저 위에 사람이 있다는 말이 그들에게 과연 얼마나 전달이 제대로 될까"면서도 "어떻게 해야 이 투쟁을 더 제대로 알려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 자본에게 압박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  13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 본사 앞에서 퇴근길 저녁 선전전을 진행하는 유최안 전 금속노조 거통고지회 부지회장. 김형수 거통고지회 지회장은 조선소 하청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3월 15일부터 30미터 상공 CCTV 철탑 위에서 고공 농성을 진행하는 중이다.


ⓒ 유지영




이날 저녁 선전전에는 유최안 전 거통고지회 부지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2022년 6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외치면서 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ｍ 크기 감옥을 만들어 자신을 스스로 가둔 그다. 막 건물 밖으로 나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퇴근길 시민들 틈에서 그가 발언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지나가는 길 위로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보면 한 명의 노동자가 60일째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영화를 누리려고 저 좁은 곳에서 60일을 버티고 있나 궁금하신가요.
한 달에 30만 원 정도의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2조 원이라는 돈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한 한화오션은 저임금 하청노동자의 한 달 30만 원 임금 인상 요구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녹색불이 들어오자 시민들은 제각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 기사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여성노동자의 고공농성 500일, 세종호텔 고진수 98일, 한화오션 김형수 68일을 맞아 제작된 <굴뚝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굴뚝신문> 제작에는 고공농성 해결을 촉구하는 14개 언론사 현직 노동기자들과 사진작가, 교수, 노동운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 <굴뚝신문> 구매 https://url.kr/wlcun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