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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왔어? 오늘은 뽑히려나.”
지난 11일 오전 4시 30분 서울 최대 조선족 인력 시장인 남구로역 일대 인도는 일감을 기다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 대부분은 50~70대 중·노년층이었다. 서로를 ‘형씨’라고 불렀지만 인부들의 이마와 눈가엔 주름이 졌고, 작업 조끼를 입은 등은 구부정했다. 30분 뒤 인부들이 3~5명씩 짝 지어 승합차를 타고 인천·동탄·마곡 등 수도권 공사 현장으로 떠나기 시작했지만 그나마 젊은 4050이 대부분이 국제금융센터 었다. 인력 사무소 현장소장 신봉춘(52)씨는 “힘 좀 써야 하는 건설 일에 나이 든 사람만 줄을 서니 절반 이상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고명도(72)씨는 “매일 새벽에 나와도 뽑히지를 않는다. 지난달엔 하루, 이번 달엔 이틀밖에 일을 못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대출50만원 픽=이진영


초고령 시대에 전국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고령화되고 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은 외국인 55만3664명 가운데 60세 이상 인구는 22만2563명으로 40.2%였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사이버지부 따르면 전체 외국인 건설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재외동포 비자 소지자다. 이 탓에 건설 일이나 화물 운송 등 이른바 ‘3D 업계’는 젊은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하고 싶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작 건설 업계에선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상황이다.
이날 오전 5시 30분 인부 모집이 마감되자 “오늘도 학자금대출 한도 공쳤다”는 한숨이 곳곳에서 나왔다.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왔다는 김모(64)씨는 “벌써부터 나이 많다고 일 못 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작업복이 든 봉지를 들고 자리를 떴다. 한 60대 남성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20분간 줄담배를 피웠다. 인부들 일부는 본지 취재팀에 “인력 사무소에서 나왔냐. 일감 좀 달라”고 했다.
3년이내 반면 3D 업종 현장에서는 젊은 인력을 사수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받고 들어오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도 최근엔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업무 강도가 낮은 제조업 분야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건설 현장 소장 차모(60)씨는 “인력 사무소에 조르고 졸라 운 좋게 젊은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면 1만~2만원의 웃돈을 얹어주거나 일 끝나고 밥·술까지 사 먹이며 내일도 나와 달라고 사정한다”며 “그렇게 안 하면 다른 공사장이나 공단에 사람 다 뺏긴다”고 했다. 건설 현장뿐 아니라 조선족들이 주로 일하는 간병인, 음식점 종업원 등 서비스업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세종시의 한 요양원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환자를 들어 옮겨야 하는데 나이가 있으면 고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며 “20~30대 간병인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 고령화의 원인은 조선족 근로자들이다. 재외 동포 비자를 받고 온 외국인들에겐 단순 업무 취업이 금지돼 있지만, 상당수가 내국인이 기피하는 건설 일용직, 청소 업무 등을 하고 있다. 조선족 향우회 관계자는 “한국에 머무는 조선족 대부분이 1990~2000년대에 정착한 사람들”이라며 “최근엔 중국 대도시에 있는 기업에서 일하려는 추세가 강해져 젊은 조선족 유입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고, 젊은 인력의 국내 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정부가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대학과 국내 건설 업체들의 협약 등을 통해 건설 지식을 가진 젊은 인력을 데려와 단순 노무 직종보다 전문 인력 비율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